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This is 스파르타

    잭 스나이더(Zack Snyder)가 감독한 영화 "300"은 레오니다스 왕과 그의 300명의 스파르타인들이 대규모 페르시아 군대에 맞서 용감하게 맞서 싸웠던 테르모필레 전투를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재현한 작품입니다. 충격적일 정도로 세련된 비주얼과 단순명료한 선악 구도 덕분에 별다른 고민없이 즐길 수 있는 오락 영어로 쓰는독보적인 명성을 갖게 된 영화 300
    하지만 그러한 장점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영화를 비판하게 만드는 단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오늘은 영화 300을 들여다 보면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와 스파르타가 망할수 밖에 없었던 의미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스파르타식 자유 개념

    "300"에서는 페르시아에 대항한 스파르타의 싸움이 자유를 위한 싸움으로 진행됩니다. 레오니다스 왕과 그의 전사들은 폭정과 억압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입니다. 스파르타인에게 자유란 외국의 통치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죽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는 페르시아 왕의 복종 요구에 대한 레오니다스의 저항에서 촉발되며, 스파르타인은 폭군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의 자유 개념은 개인의 욕망보다 명예, 용기, 집단적 이익을 중시하는 그들의 정체성 및 삶의 방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주인공인 스파르타 군의 고귀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페르시아 꾼들을 마치 생지옥에서 금방 튀어나온 악의 화신 같은 느낌으로 그려낸 방식인 서양이 편견을 갖고 동향을 바라보면 어떤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페르시아의 지배로부터 집단적 자유를 위해 싸우는 반면, 그들의 사회는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으며 개인의 자유가 있을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스파르타인은 태어날 때부터 엄격한 훈련과 엄격한 사회적 규범을 받습니다. 이 역설은 집단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 사이의 긴장을 강조하며,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회조차도 개인의 자유에 심각한 제약을 가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스파르타는 자신들의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태생적으로 왜소 하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모두 벌여 왔습니다.그런 과정을 통해 더 강한 국가를 만들어서 그들이 신봉하는 이성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하지만 스파르타의 이러한 폐쇄적인 전통은 오히려 에피알티스 같은 결정적인 이탈자 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국가를 강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희생을 감수해 가면서 까지 폐쇄적인 엘리트주의 를 지켜 왔지만 오히려 모든 이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그런 전략이 자신들의 내부에서부터 가장 위험한 적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평등의 위선

    영화는 스파르타 평등의 본질적인 위선을 보여줍니다. 에피알티스에 대한 가혹한 대우와 스파르타인이 아닌 사람들을 사회의 혜택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은 평등의 선택적 적용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선택적 평등은 평등의 진정한 본질과 그것이 계층적 사회에서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스파르타인의 믿음과 타인을 하등한 존재로 대하는 태도는 궁극적으로 평등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약화시킵니다.반면에 본인 입으로 자꾸 관대 하다고 자랑 하는게 좀 흠이긴 하지만 페르시아의 왕께서는 끝없이 관대 하신 모습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그들은 다른 민족이나 장이 가능하기 만 하다면 동물 까지 가릴 것 없이 모두 자신들의 통치 아래에 포함시켜 세력을 확장해 왔습니다
    페르시안 을 바로 그러한 관대함 과 다양성이 덕분에 20만 이라는 엄청난 대군을 구성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그아무리 위대한 전사를 양성 한다고 한들 스파르타 의 방식이라면 절대로 페르시아와 같은 규모의 제국이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자유를 위해 싸운다는 자부심 덕분에 스파르타의 병사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도 잊으며 적들에게 맞설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영화의 매력을 느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그들의 외침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매우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함정 역시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영화 속 스파르타 인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말하지만 정작 그들에겐 태어날 때부터 자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은 일곱 살이 되면 바로 군대에 징집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서 살아가야 있습니다.또한 이성과 논리를 강조하며 페르시아를 야만인 처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결정은 신탁이라는 미신에 맡겨 버리고 있습니다.전통과 자유 명예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그들은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인가를 통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유 조차도 같이 못했습니다.그저 군사적인 방법만을 우선시 하는 전체주의 광기가 온 국가를 뒤덮고 있을 뿐이 었습니다.거기다 스파르타는 각자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 주시기도 않았습니다.그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일을 대 하시며 균등한 기회 역시도 모두에게 되어 주셨던 페르시아의 왕과는 다릅니다.영화는 어떻게든 스파르타를 용맹하고 자유로운 국가로 그려 내려고 했습니다.자유를 수 한다고 외치지만 한번더 자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던 스파르타 의 사람들 이 영화를 보면서 뭔가 알수없는 이질감을 혹시 느끼셨다면 그건 바로 이러한 모순 때문이었을 겁니다.어떻게든 무례하고 오만한 존재로 페르시아 망을 깎아내리기 위해 만들었던 이 대사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란 걸 말입니다.

    결론

    영화 '300'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스파르타가 궁극적으로 몰락한 이유에 대한 드라마틱하고 시사하는 바가 깊은 메세지를전달해 줍니다. 테르모필레(Thermopylae)에서 스파르타인의 영웅적인 입장을 묘사함으로써 이 영화는 계층 사회에서 자유의 높은 비용과 평등의 복잡성을 강조 하며 스파르타의 삶의 방식에 내재된 결함이 있음을 알게됩니다. 스파르타의 삶의 방식은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지속 불가능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오싹한 공포영화도 좋지만 시원한 '하이볼'한잔과 함께 남성미 넘치는 영화 [300] 추천합니다.

     

     

    반응형